툭하면 입법 패싱, 위헌논란 부르는 '시행령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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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086회 작성일 19-11-05 10:53본문
툭하면 입법 패싱, 위헌논란 부르는 문 정부 '시행령 정치'
[중앙일보] 입력 2019.11.04 05:00 수정 2019.11.04 09:32
문 정부 시행령 2년새 2053건
검찰 개혁 등 정권 의지 실린 정책
법 개정 안 거치고 정부 ‘마이웨이’
“3권분립·법치주의 체계 흔들려”
③ 자본시장 및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대통령령) <9월 6일 입법 예고, 내년 시행 예정>
④ 지구단위계획 수립 지침(국토교통부 훈령) <9월 23일, 당정서 개정 방침 결정>
⑤ 형사사건 공개 금지 등에 관한 규정(법무부 훈령) <10월 30일 제정, 12월 1일 시행 예정>
올해 들어 정부가 국회 입법을 거치지 않고 추진해 위헌 논란을 빚고 있는 정책들의 일부다. ①은 사립유치원에 '에듀파인'(국가회계관리시스템)을 강제하기 위해, ②은 회사에 5억원 이상의 횡령·배임·사기 피해를 준 기업인들의 회사 복귀를 막기 위해 도입됐다. 교육부는 박용진 민주당 의원이 사립유치원에 에듀파인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유아교육법 개정안 등을 발의(2018년 10월 23일)한 지 넉 달 만에 교육부령으로 에듀파인을 강제했다. 법률로만 가능한 형사처벌 대신 정원 감축 등 행정제재를 앞세워 한 일이다. 대형 사립유치원장 340명은 지난 6월 “재산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② 역시 해당 기업인의 직업 선택 자유 등의 기본권을 국회가 정하는 법률이 아닌 부령과 대통령령으로 제한하는 것이 위헌이라는 경영계와 학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검찰 특수부 폐지에 이어 ‘조국발(發) 검찰 개혁’ 2호인 ⑤는 검찰이 수사하는 형사사건에 대한 취재를 원칙적으로 차단하고 ‘인권침해적’ 오보를 낸 것으로 검찰이 판단한 기자에 대해 검찰청 출입을 제한하는 내용이다.
문재인 정부가 중점 정책들을 대통령령 이하의 행정입법을 수단으로 추진하면서 곳곳에서 갈등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중앙일보가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을 통해 법제처에서 받은 역대 정부 법률·시행령(대통령령)·시행규칙(총리령·부령) 심사 및 공포 건수 집계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2년4개월여 동안(2017년 5월 10일~2019년 9월 27일) 2053건의 시행령이 공포됐다. 이는 박근혜 정부 4년2개월간(2013년 2월 25일~2017년 5월 9일) 3667건의 55.9%, 이명박 정부 5년(3762건)의 55%를 넘는 수치다. 오롯이 문재인 정부의 해였던 2018년(896건) 수준으로 시행령을 개정한다고 가정하면 5년간 4480건이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김선택(헌법학) 고려대 교수는 “국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정부가 입법절차를 우회해 시행령을 주요 정책수단으로 삼다 보면 삼권분립이 흔들리고, 상위법과 모순되거나 아예 법률에 근거가 없는 시행령이 늘어나는 등 법치주의 체계가 흔들리게 된다”고 말했다.
‘훈령’으로 내려온 “마이웨이”
자유한국당 전희경 대변인은 “민주정부를 표방하는 문재인 정부 들어 시행령·부령에 의존한 마이웨이가 더 심해지고 있다”며 “유치원 3법 논란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지적했다.
최근에는 국민의 기본권을 크게 제한하는 규제들이 훈령·고시·예규 등 행정규칙 수준의 행정입법으로 도입되고 있다. 훈령 등은 대통령령이나 부령과 달리 대외적 효력이 없고 원칙적으로 공무원 조직 내부의 행동지침이거나 운영규칙일 뿐이라는 이유로 국무회의 의결이나 법제처 심사조차 거치지 않은 채 공포된다. 지난 9월 23일 당정이 개정키로 결정했다는 ‘지구단위계획 수립 지침’이 국토부 훈령이다. ‘스타필드’ 같은 복합쇼핑몰의 개점 허가 여부를 지방자치단체장이 판단할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이다.
위헌 논란에 휩싸인 ‘형사사건 공개 금지’도 법무부 훈령이다. 김한규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법무부 훈령을 두고 “오보 판단의 기준이 자의적이고 사건 공개 여부를 심의한다는 민간 참여위원회 구성도 코드 인사가 될 개연성이 높다”며 “공무원 조직 내 업무지침에 불과한 훈령으로 규율할 수 있는 범위를 초월했다”고 지적했다. 조진만(정치외교학) 덕성여대 교수는 “행정입법 또는 행정명령은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바뀔 수 있어 불안정한 규범”이라며 “궁극적으로 제도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떨어지는 게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직접민주주의 강조와 맞물려 걸린 시행령 드라이브
실제로 ‘시행령 정치’와 ‘직접민주주의’는 주요 국면에서 함께 키워드로 부상했다. 국정운영 5개 년 계획의 내용을 토대로 한 달 뒤 열린 취임 100일 기념 ‘국민인수위 대국민 보고회’(2017년 8월 20일)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이제 국민들은 주권자로서 평소 정치를 그냥 구경만 하고 있다가 선거 때 한 표를 행사하는 이런 간접민주주의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렇게 (간접민주주의를) 한 결과 우리 정치가 이렇게 낙오됐다, 낙후됐다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법률 개정 없는’ 검찰 개혁 드라이브의 한복판에도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이 작용했다. 9월 18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취임 이후 처음 열린 당정협의에서 “법 개정 없이 추진이 필요한 검찰 개혁 과제들을 발굴해 불가역적이고 신속하게 추진한다”고 보고했다. 민주당이 자체 검찰개혁특별위원회(위원장 박주민)를 만들어 법무부와의 행정입법 개정 경쟁에 뛰어든 것은 서초동에서 대규모 ‘조국 수호’ 촛불집회가 열린 다음 날인 9월 29일이었다. 지난달 7일 문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선 거리에서 분출되고 있는 ‘조국 수호’와 ‘조국 퇴진’ 목소리에 대해 “국론 분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특히 대의정치가 충분히 민의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 때 국민들이 직접 의사표시를 하는 것은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직접민주주의 행위로서 긍정적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후 법무부와 검찰 간에도 행정입법 경쟁에 불이 붙었다.
『청와대 정부』의 저자 박상훈(국회 미래연구원 초빙연구원) 박사는 “문재인 정부 초기부터 ‘국민청원이나 여론→청와대 개입→시행령 개정’으로 이어지는 정책 집행의 구조가 두드러졌다”며 “직접민주주의를 강조하면 시민의 힘이 세질 것 같지만 행정권이 강해지는 역설이 벌어진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이라고 말했다.
임장혁·윤성민·김준영 기자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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